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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를 좋아한다는 것,

월드컵이 거의 끝나가고 있습니다. 한국팀의 경기는 이미 한참전에 끝났습니다. 마지막 남은 4개국이 우승을 위해 그들의 가진 전부를 쏟아부을 준비가 되어있는데도 우리의 '축구팬'들은 관심이 없네요. 밤새워 길거리에서 울고 웃고 붉은 옷을 입고 대한민국을 외쳤던 분들께서도 아마 그시간에는 주무시거나 뉴스나 하일라이트로 결과를 접하고는 아 그리되었군..하시겠지요. 그나마 그정도는 다행이고 이마저도 관심끄는 사람들이 태반입니다. 물론 외국의 열혈 축구팬들도 자국경기가 끝나면 월드컵 열기가 식고 대부분 일상으로 돌아갑니다만, 이렇게 관심조차 꺼버리는 경우는 우리가 좀 유별나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맘때쯤되면 늘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는 주제가 있습니다.

언론에서는 항상 K-리그를 살려야 한다고 주구장장 외치고 경기장을 찾아달라는 월드컵 대표 선수들의 하소연, 그 뒤에는 항상 K-리그를 지켜온 '축구팬'들과 월드컵에만 열광하는 '월드컵팬'들의 갑론을박이 시작되는, 어쩌면 월드컵 보다 더 뜨거운 시즌이 지금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94년 미국 월드컵이후부터 줄곧 들어오던 이야기인데, 소위 '월드컵팬'들의 'K-리그 수준 비하'가 그것입니다. 밥안먹고는 살아도 축구없이는 못 살 정도로 축구는 좋아하는데, K-리그는 도무지가 허접하고 수준낮고 재미없어서 못보겠더라, 그래도 그나마 아쉬운 마음에 주말에 하는 박지성 이영표의 프리미어 리그 경기보면서 축구에 대한 아쉬움을 달랜다는 것이죠.

이런분들의 공통점이 박세리가 US 오픈 우승했을때 맨발 투혼에 감동했고, 박찬호가 LA 다저스에서 연전연승할때 시계 맞춰놓고 일어나서 박찬호 응원했고 프리미어리그 팀중에 젤 좋아하는 팀은 아무래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토튼햄 핫스퍼입니다. 요즘은 이승엽의 일본프로야구 경기에도 꽤 관심이 있죠. 상황이 이정도가 되는데도 여전히 자신은 열혈 축구팬이자 야구도 좋아하고 골프도 보니 참 재밋더라. 이럽니다.

틀린말 아니죠. 아닙니다. 그리고 애국심이라는거, 그것이 설령 스포츠를 통한 대리 만족이라도 좋지요. 우리 나라 선수들이 선전하는데 응원해 주는거, 단일민족국가인 우리나라 정서로는 당연하다 못해 정말 좋은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문제는 그분들이 스스로 축구팬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정확한 사실은 축구좋아하는데, K-리그는 형편없어서 재미없더라가 아니고, 축구는 안좋아하는데 월드컵은 국가대항전이라 그런지 정말 흥미진진하더라... 이야기가 이렇게 되어야 하죠. K-리그가 허접해서 재미가 없더라가 아니고 아직 내가 축구팬이 아니라 그런지 국가대항전이 아닌 경기에는 별 재미를 못느끼겠더라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이런 착각에는 축구의 단순성, 몇경기만 보고나면 내가 축구전문가가 되는듯하는 그 규칙과 시합의 (겉으로 보이는) 단순성이 한몫을 하지요.

올해는 이런 비유가 유행을 하고 있습니다.
'음식점의 음식이 맛이 없는데, 손님이 의무적으로 가서 먹어야 할 이유있냐, 맛없는 음식점은 도태되기 마련이다'라는 비유입니다.

이것은 가정부터가 잘못되었고, 비유대상도 잘못되었습니다.

우선, 고래고기의 맛도 모르는 사람이 고래고기를 먹어보고는 무슨 이따위 음식을 파냐라고 한다면 그넘이 이상한 넘이죠. 이사람들은 고래고기에 무슨 스테이크 양념 잔뜩 발라서 고래 고기 냄새 안나게 하여, 입에 살살 녹게 향신료를 듬뿍 발라야 아 먹을만 하다면서 먹어주는 사람입니다.

그렇게라도 팔아서 한명이라도 손님을 늘리는것이 낫다고 생각하면 대략 난감입니다.

저는 이런 가정이전에 맛없는 음식점은 도태되기 마련이라는 가정, 즉 팬서비스 없고, 볼거리 없는 K-리그는 도태되기 마련이라는 말 자체부터가 불쾌합니다. 축구라는 스포츠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는 이유를 잘 생각해 보면 될텐데 어찌 이리 볼거리에 집착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축구라는 스포츠를 가수들의 공연에 같이 끼어야 봐준다는 이런 오만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축구 보아달라는 말 자체가 무의미하지 않습니까. 스타가 없다고 불평입니다. 월드컵 32개국 국민들이 다 좋아하는 스타가 우리나라 선수단에 있기나 해서 우리나라 팀이 우리국민에게 인기가 있는것인지 묻고싶습니다. 나와 연고가 있는 우리 대표선수들이 나한테 스타인 것이지요. 결국 프로축구는 왜 스타가 없고 마케팅이 그따위라서 재미가 없느냐가 아니라 제발 내가 우리동네 프로클럽에게 국가대표같은 느낌을 가지게 뭔가 해달라고 얘기하는게 맞지요.

축구를 한낱 서비스 상품으로 취급하는 사람들의 태도 자체가 불쾌합니다.

그러려니 하고 지나가는 편인데, 어느 님의 K-리그 까기 글에 수많은 사람들이 맞장구 쳐대는 모습이 불쾌해서 걍 떠들어 보았습니다.

어짜피 연말 아시안게임 되기전까지 축구는 다 잊고 야구 볼거면서 (아시안게임 축구에는 왜그리 또 열광하는지) 왜그리 까대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것을 전혀 느낄 필요없는 열등감 (축구팬 아니라면 누가 혼내나요?) 내지는 잠재의식속의 일말의 양심에 대한 반발이라고 봅니다.

그냥 저처럼 밤새워 쇼트트랙 동계올림픽 보면서도 쇼트트랙 팬이라고는 하지 않고, 선수들이 파벌싸움을 하던 말던 관심끄면 될텐데 말이죠. 저는 쇼트트랙 팬이 아니라 '동계올림픽 쇼트트랙(그것도 결승전 위주로다가)' 팬이거든요. 이럼 누가 뭐라 합니까.

프로연맹은 있지도 않은 잠재적 리그팬 만드려는 생각 당장 집어 치우고, 축구가 왜 재미있는지부터 홍보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