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5일 어린이날,
집에 어린이가 없는 우리집은 그날 별 스케줄이 없다.
친한 친구가 2시에 계산성당에서 결혼식을 하여 다녀온 후에 (덕분에 수원 못갔음 ^^) 집에서 6시에 녹화 중계되는 포항 - 수원 빅매치를 보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마눌께서 느닷없이 닭고기가 먹고 싶으시다하여 BBQ 양념통닭 한마리를 시켜서 대충 먹으며 축구를 보고 (경기 무지하게 재밋었음, 포항 나이스~) 정리하려는 순간 !
왠 네모난 상자가 하나 눈에 보이는데 나는 그저 어린이날 선물인 장난감인줄로만 알았는데, 상자에 육지 소라게라고 씌여있고 안에는 조그만 소라게 한마리가 다소곳하게 앉아있다.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여 한 10여분 들여다 보다가 문득 드는 생각이, '젠장 이거 어떻하지? 버릴수도 없고...'
알아보니 이놈은 바닷가 근처 습한 숲에서 사는 육지성 소라게라고 한다. 그건 그렇고 팔자에 없이 우리 인생에 끼어든 이놈을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벌써 5년전 신혼여행,
밤에 도착한 몰디브, 다음날 아침 햇살에 눈을 떳을때 눈앞에 펼쳐진 지상 낙원...
마눌님과 내가 6일간 얼마나 행복하게 보낸 곳인지..
바닷가에서 다리 사이로 지나가던 물고기떼들, 함께 수영하던 바다거북, 새끼 상어, 커다란 가오리 (정말임..^^), 결정적으로 산호가루로 뒤덮힌 새하얀 해변에 무수히 많던 '소라게'.
예쁜 조개껍질과 소라게를 잡아서 며칠동안 방안에 두고 같이 지내던 기억이 들었다. 저녁에 리조트 홀에서 소라게 경주도 하고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더구나 우리집에는 아직도 그때 몰디브에서 500달러의 벌금위험을 무릅쓰고 짱박아온 소라껍질들이 있다. 갑자기 뭔가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것도 인연이다 싶어 함 살려보자고 뭔가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다음과 같다.
일단 가까운 월마트에 가서 채집통을 산후, 칼라스톤을 깔아주고 (산호사로 바꿀 예정), 거실에 있던 수석 자그마한 것을 산으로 만들어주고, 마눌님께서 매주 꽃꽂이 교실에서 만들어 오는 작품에서 몰래 나뭇가지 몇개 잘라서 만들어주고, 나뭇잎도 넣어주고, 싱가폴에서 사온 사자상도 넣어주어서 (웬지 누워 있으니 혹성탈출에서 자유의 여신상 넘어져있는 분위기) 사육장이 완성되었다.
마지막으로 몰디브에서 몰래 짱박아온 소라 껍질들을 넣어주었다.
바다 소라게가 아니라 육지 소라게지만 그래도 소라게는 남다른 추억이 있는 생물이다. 억지로 등떠밀려 키우게 되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잘 살기를 바란다. 소라게는 지금 산위에서 도닦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이름을 '장삼봉'이라고 지어 주었다. 수명이 10년은 훨씬 넘는다고 하는데, 아마 10년 정도 후에는 날아다니며 저 돌바위산에 글자를 파바박 적을 것이다. 진짜 장삼봉처럼, 사상 유일의 절대 무공 소라게로 키워볼 생각이다.
듣자하니 두어마리 더 사서 넣어주어야 한다고 한다. 그외에도 몇가지 더 필요하다고 하는데 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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