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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연못 (On Golden Pond)

오래전, 아주 오래전 입니다. 제가 중학생 정도 였을때, 영화를 무지하게 좋아해서 주말의 명화, 명화극장, 뭐 이런거 꼬박 챙겨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이런 기억들 가지고 계시지요.

당시는 잡지라고는 스크린이라는 우리나라 잡지 하나밖에 안나오던 시절이고, 티비에 하는 영화가 괜찮은 영화인지 (유명한 영화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우리 아버지가 그 영화를 아시느냐 모르시느냐로 구분하던 시절이었죠. ^^

그리고 또하나의 절대적인 기준은 명화극장을 소개하던 영화평론가 정영일님의 멘트였습니다. 이분이 무조건 보라면 자다 깨나도 봐야하는 거였죠. 그리고 오래 보다보면 그분이 소개하는 말투나 어감이 그영화의 중요도를 어느정도 표현하고 있음을 느끼게 되고, 그러다보니 소개 방송만 보아도 이게 좋은 영환지 아닌지 알수있는 정도가 되죠.

그분이 소개해 주신 영화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황금 연못'이죠.
저는 '스팅' 이나 '타워링' '지옥의 특전대' 이런거 해주면 좋아하지, 영감님, 할머님 나오는 이런 따분한 영화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정영일님이 너무 정성스럽게 소개를 해 주셔서 잠오는 눈 치켜뜨고, 이종환의 디스크쇼 공개방송 듣지 않고 저는 명화극장 '황금 연못'을 보았습니다.

일단 배우들이 화려하죠. 유명한 희곡을 영화화 한 것이라 등장인물이 많지 않습니다. 영감님, 할머님, 딸, 딸의 재혼남, 재혼남의 아이, 우체부, 요정도가 다 입니다. 진짜 부녀인 헨리폰다와 제인폰다가 극중 부녀로 출연하고, 헐리우드 황금기를 대표하는 여배우 캐서린 헵번이 할머니 역이죠.

일단 이영화는 가족간의 화해, 한 세대를 걸쳐 서로를 오해했던 부녀간의 화해가 주된 내용이고, 그와 동시에 두 노인들의 노년의 삶과 생각을 말하는 영화입니다. 중학생이 보기에는 따분하기 짝이없는 영화가 아닐수 없었습니다. 실제로 그 당시에는 볼만은 했지만 따분한 영화인것은 사실이었는데, 그나마 제가 이 영화에서 찾았던 흥미거리는 그 영감님과 집에 맡겨진 소년이 세대차를 극복하며 친구가 되는 매개체가 된 송어낚시였습니다.

배경이 호숫가 별장이고, 영화 대부분이 호수에서 배타고 낚시하거나, 호숫가에서 사색하거나, 호수에서 물놀이하는 장면입니다. 호수가 일단 너무 아름답고, 그리고 영화에 등장하는 구닥다리 보트와 가이드모터가 달린 카누도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딸이 어릴때 사용하던 낚시 조끼를 아이에게 입히고, 자신의 평생 취미였던 낚시를 가르치며 대화하고 서로를 이해하던 이 영화에서의 그 송어낚시가 얼마나 아름답게 보였는지 모릅니다. 아마 제가 낚시에 대한 좋은감정이랄까, 동경이랄까, 그런것이 아마 이때 생긴것이 아닌가 합니다.

영화는 지루했다는 기억으로 남아 있었지만, 그 낚시 장면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으니까요. 이후10여년후 로버트 레드포트 감독이 만든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플라이 낚시 장면이 나오기 전까지 가장 아름다운 낚시 영화가 아니었던가 합니다. 노인과 소년이 대물송어 '월터' (라고 이름붙인) 를 잡으려 보트에 나란히 앉아서 낚싯대를 드리운 장면은 정말로 아름답습니다.

요즘 배스낚시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문득 그 시절의 영화였던 이 '황금 연못'이 생각이 납니다. 그래서 여차저차해서 다시 한번 보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낚시장면은 그대로 이지만, 저도 어른이 되어서 그런지 (그때보다는) 지루하기 짝이 없었던 영화가 이제서야 더할나위없는 감동을 주더군요.

이 영화로 81년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과 여우주연상을 휩쓴 헨리 폰다와 캐서린 헵번의 명연기가 숨이 막힐 정도입니다. 죽음을 앞둔 노인역의 헨리 폰다는 이 영화를 마치고 이듬해 진짜로 세상을 떠났지요. 헨리 폰다에게 이 영화는 연기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게다가 극중에서 갈등을 가진 그의 딸 제인 폰다와는 실제 젊은날 이와같은 갈등이 있었다고 하지요.

명배우들의 명연기, 그리고 훌륭한 희곡이 역시 훌륭하게 각색된 영화입니다. 말 그대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각색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1981년도 미국의 전체 흥행 2위를 차지한 영화라고 합니다. 레이더스가 1등이고, 그해에는 성룡의 '캐논볼'도 미국에서 흥행을 하였습니다.

오랜만에 정말로 정말로 좋은 영화, 잊고 있었던 영화, 다시 한번 보았습니다.
역시 정영일 선생님은 빈말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빅조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