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국이 쓰러졌다.
이번 부상이 그에게 얼마나 큰 좌절로 다가올지 짐작하기에 마치 내 살을 찢는것처럼 아프다. 황선홍은 이동국의 우상이자 선배이다. 학창시절부터 그가 가장 닮고 싶었던 선수가 황선홍이다. 닮지않아도 되는 불운까지 빼다 박았다. 이제 그 불운의 역사는 하일라이트를 맞이하고 있다.
황선홍은 한국축구계에 혜성같이 나타나 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 출전하였다. 사상최악의 3패라는 씁쓸한 성적으로 대회를 마쳤지만 한국축구는 그이후 10여년간을 한국축구의 주역으로, 국민들을 때로는 천국으로 때로는 지옥으로 여행시킬 스트라이커를 보게 되었다. 그가 바로 황선홍이다.
당시의 황선홍은 소위말하는 주워먹기의 달인이었다. 탁월한 위치선정과 반박자 빠른 슛으로 언제나 골을 넣는 그를 두고 실력에 관한 논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멋모르고 출전해 멋모르고 뛰었던 90년 이탈리아 월드컵, 그대회이후 그는 축구의 눈을 서서히 뜨게 된다. 독잃생활후 귀국해 맞이한 94년 미국 월드컵, 본인에게는 악몽과도 같았던 그 웓드컵, 세계최고의 골키퍼 일그너를 비켜가는 멋진 슛을 성공시킨 그였지만 표정은 어두웠다. 그는 한국최고의 스트라이커였지만 팬들에게도 그에게도 그해의 월드컵은 악몽이었다.
미국월드컵 전해였던 93년 그는 독일에서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입고 재활을 하였다. 그리고 다음 월드컵을 앞둔 97년, 그는 또다시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입는다. 4년을 기다린 아니 8년을 기다린 월드컵, 그는 이를 악물고 버틴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 월드컵을 앞두고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한다. 이제 남은 것은 월드컵. 하지만 너무나 불행하게도 그는 월드컵을 한달여 앞둔채 중국과의 친선경기에서 부상부위였던 무릎을 또다시 다쳐 월드컵출전이 불투명해진다.
독일월드컵이 끝난 얼마후 황선홍 선수를 직접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월드컵에 욕심을 내지않고 조급해하지 않고 차분히 치료하고 재활했더라면 한경기는 뛰었을지 모른다고 아쉬워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월드컵에 뛸수만 있다면 그 자리에서 은퇴해도 좋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만큼 그는 한에 젖어 있었다. 월드컵이 무엇이길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것을 황선홍의 마지막 월드컵이라고 생각했다. 나조차도, 이제 황선홍은 은퇴를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하는 노장선수인것이었다.
그후 황선홍은 일본에서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하는등 전성기의 기량을 그대로 이어나갔다. 그리고 철저한 자기관리로 아무도 예상치못했던 2002년 월드컵에 후배들과의 경쟁에서 당당히 승리. 그의 인생에 있어서의 정말로 마지막이될 월드컵에 참가하게 된다. 한국축구사상 월드컵 첫승, 그 결승골을 바로 황선홍이 넣었다.12년동안의 한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8년전 골을 넣고도 울음을 삼켜야했던 아픈 기억은 이제 없었다. 그는 그한골로 그를 비난했던 모든 팬들, 그를 비웃었던 행운의 여신, 그를 괴롭혔던 그동안의 모든 부상을 용서했다. 그렇게 황선홍의 축구는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했다.
이동국,
이동국은 김두영과 함께 97년 포철공고를 고교 3관왕을 이끌고 화려하게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했다. 박성화 포항 감독에 의해 풀타임 주전을 보장받은 그는 거칠것없는 영파워를 보여주었고, 그해의 월드컵에 당당히 깜짝 승선하게 되었다.
경기가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던 네덜란드전, 19세의 이동국이 투입되었다. 한국의 축구팬들은 절망속에서도 희망을 보았다. 지는해 황선홍이 있었다면 뜨는해는 이동국이었다. 이회택, 최순호, 황선홍으로 이어지는 포항 스틸러스의 황금계보, 아니 한국축구의 황금계보를 잇는 황태자의 탄생이었다.
역시 멋모르고 겁없이 뛰었던 98 프랑스 월드컵, 이동국은 월드컵을 계기로 한층 성숙한다. 미우나 고우나 한국축구의 기대주로 비난과 칭찬을 한몸에 받던 이동국은 다음월드컵인 2002년 월드컵에서 엔트리 탈락이라는 큰 좌절을 맛본다. 황선홍이 미국월드컵으로 겪었던 상처, 비난을 넘어서는 엔트리 탈락, 그는 '똥볼의 황제 황선홍'보다 더한 '히딩크에 버림받은 이동국'이라는 축구팬들의 비난에 한이 맺힐 정도로 상처받게 된다.
다시 4년후, 황선홍이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그랬던 것처럼 이동국도 이제는 변했다. 골넣을 줄만 아는 선수에서 이제 그 움직임 하나 하나에도 위엄을 갖춘 진정한 국보급 공격수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토록 닮기를 원했던 선배 황선홍의 아픈 경력까지 닮은 것일까. 역시 월드컵을 2달여 앞둔 지난주 이동국은 치명적인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부상을 당했다.....
월드컵이 뭐길래 십자인대까지 찢어진 이 선수가 자신의 선수생명을 걸고도 뛰려는 것일까.
도대체 월드컵이 뭐길래 황선홍은 진통제까지 맞으면서 단한경기를 위해 은퇴까지도 각오했던 걸까.
내마음은 이동국이 월드컵에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가 수술을 받고 다시 재기하여 다음 월드컵을 기약하는 것이 좋을것 같다. 가족도 있고, 그역시 올해만 축구하고 말 인생도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말을 감히 못한다.
당사자는 선수생명을 걸고 뛰는데 감히 팬일뿐인 내가 그 울분, 의지, 절망을 어떻게 헤아릴수 있을까. 그는 그때의 황선홍의 마음과 같을 것이다. 이번 월드컵을 뛸수 있다면 선수생명 따위 개의치 않을 것이다. 무엇이 그에게 이렇게 월드컵에 집착하게 만들었나를 생각하면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도대체 월드컵이 뭐길래,
고등학교때부터 국가를 위해 뛰었던 선수가 자신의 가족, 인생을 담보로 선수생활까지 걸어야 한단 말인가. 앞으로는, 이제는 이렇게 사지에 내몰리는 선수가 없길 우리모두가 반성하고 깨우쳐야 한다.
하나의 소망이 있다면 이동국의 마지막 월드컵이 될 다음월드컵에는 2002년의 황선홍처럼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면 좋겠다. 그때는 이동국 역시, 자신을 비난하는 모든것들에, 그리고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힌 모든 부상, 불운을 웃으며 용서할수 있게되길 바란다.
이런 월드컵이라면 더이상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bigjo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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