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록,
그의 대학시절에는 그를 몰랐다. 그의 이름을 처음 들었던 것은 포항스틸러스에 입단하기 얼마전 깜짝 국가대표로 발탁되었을때였다. 그 이후 그를 주목하게 되었고 최순호감독에 의해 드래프트 1순위로 포항입단. 그의 센스있는 플레이와 전광석화같은 중거리슛을 기대하며 이동국의 뒤를 받치는 포항 중원의 에이스로서의 그를 기대하기 시작했다.
물론 김상록 선수에 대한 첫기억은 바로 '그날'이다. 2001년 벽두의 신년회가 열렸던 송라 클럽 하우스의 신인선수 자기소개시간. 약간은 수줍은 모습으로 자기소개를 하던 김상록선수는 '노래 하나 하세요'라는 어느 서포터의 장난섞인 요청에 부끄러운듯 고개를 숙였지만 이내 고개를 들며 노래를 시작했다. 그 천진한 모습에 많은 소녀팬들의 가슴이 녹아내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나는 예감했다. 또하나의 '스타플레이어'의 탄생을...
봄에 시작된 리그. 경기장에서도 그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윤정환의 킬패스와 박지성의 재치있는 드리블을 두루가진 그는 팬들에게 잊혀져가던 비운의 스타 백승철의 벼락슈팅까지 재현했다. 약한 체격과 소극적인 수비력은 약점이기도 했지만 오히려 팬들은 그것을 그의 개성으로 받아들였다. 소위말하는 머리좋은 축구선수의 대열에 그를 합류시키고 우러러보기 시작한 것이다.
내리막을 걷는 팀사정에 의해 수비축구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시절. 김상록은 점점 경기시간을 잃어갔고, 여린 김상록선수는 자신감마저 조금씩 잃어갔다. 팬들이 김상록을 원할때 그는 그의 플레이를 보여줄 충분한 시간을 얻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고민끝에 군입대를 택했다.
마음껏 그라운드를 누빌 기회를 얻은 상무시절. 한국의 슈퍼클럽이라는 수원을 혼자두골로 침몰시키는 기적을 연출하며 그는 자신감을 되찾았고 2년후 더욱 늠름해진 모습으로 포항으로 다시 귀환했다.
그리고...
김상록 선수가 팀 전술상의 문제등으로 인해 보다 많은 출장시간이 보장되는 제주 유나이티드로 맞트레이드된다는 소식을 듣고 한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다. 2년, 그와 같은 유니폼을 입고 다시한번 마음껏 달려보기를 기다린지 2년이다. 마치 그 2년간의 기다림이 구세주를 기다리는 아이의 마음처럼 느꼈다. 그가 돌아오면 모든게 해결될 것이라 느껴졌지만 현실은 달랐다.
예전 노태경이라는 선수도 그랬다. 그는 포항의 역대 최강 멤버중 한명으로 꼽히는 선수이다. 그의 복무시절 그가 전역하면 모든게 해결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전역후 또다시 부상과 연이은 슬럼프에 허덕이다 팬들의 기억속에 사라져갔다.
노태경과 김상록이 오버랩되었다. 하지만 그런일은 없을 것이다. 김상록은 그를 환영하는 명장 정해성감독님이 있고 그는 지금도 건강하며 훌륭한 선수이기 때문이다. 그를 이제 스틸야드에서 못보는 것이 안타깝다. 어린시절 하루종일 아빠의 선물을 기다렸는데 빈손으로 들어온 아빠를 보는 기분이다.
축구장을 전전하다보면 왠지 정이가는 선수가 있다. 어린시절부터 봐온 이동국선수도 그렇고 단 한순간도 심지어 은퇴후 술자리에서도 젠틀함을 잃지않았던 박태하 선수가 그렇고, 온국민의 환호를 받을때도 왠지 고독해 보이는 황선홍선수가 그렇고 바로 김상록선수가 그렇다.
그는 아름다운 선수이다.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축구선수이다.
며칠이 지나고 보니 오히려 잘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나이가 아직 젊고 실력이 있으니 제주로 가더라도 충분히 에이스가 될 수 있을 것이고, 그 팀의 영원히 빛나는 별로 팬들에게 사랑받는 선수가 될 것이다.
상식있는 서포터즈라면 제주 원정을 보이콧한다고 하지만, 내가 제주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에 원정가야할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 어떤 논리도 어떤 정의도 축구선수들의 아름다운 플레이, 그 하나하나를 감상할 자유를 빼앗을 권리는 없다.
-빅조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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